아름다운 고장 칠곡 석적읍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지명유래/설화전설

성곡리

위치 : 칠곡군 석적읍 성곡리

연 혁 : 3면이 山(산)으로 둘러싸여 谷間(곡간)에 형성된 3個(개)의 자연부락이 산재되어 있어 주위 산세가 城壁(성벽)처럼 솟아있는 골짜기같다하여 城谷(성곡)이라 했다 한다.

세대수 : 114 세대, 인구수 : 300명(남 151 여 149)

성곡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원성곡 마을이 城(성)모양 같고 山(산)에서 내려다 보면 온마을과 들을 살펴(省성)볼 수 있다하여 省谷(성곡)이라 불리어 지고 있다.
웃골, 상리 마을의 중심마을로서 이곳에서 활쏘기, 시읊기 등을 즐기던 장소로 골짜기 위쪽에 位置(위치)하고 있어 웃골이라 칭함.
베랑골, 발양곡 城谷(성곡) 동쪽에 있는 마을로 가파른 기슭 양달에 마을이 形成(형성)되어 發陽(발양)이라 칭함

중리

중 1, 2 리 :
광암천이 西流(서류)하여 낙동강으로 유입하며 본래 인동군 장춘면 지역으로 진실, 또는 장곡, 중동이라 불리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인동군 시미동을 일부편입 중동이라 하여 석적읍에 편입 되었다.

  • 세대수 및 인구수
    • 중1리 : 324세대, 538명(남 328 , 여 210)
    • 중2리 : 263세대, 537명(남 300 , 여 237)
  • 기존 중1, 2리 자연부락이 93년 대단위 중리구획정리로 인하여 소멸되고 대단위 아파트 및 상가가 조성되어 있음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광암 設村(설촌) 당시 들 가운데 아홉 개 큰 바위가 있어 광암이라 불리어짐.
오평 마을위에 옹구배기라는 산이 있는데 산 능선이 큰 자라의 등같이 생겨 마을 감싸고 있는데 옹구배기 중심지에 아무리 큰 가뭄에도 마르지않는다 하여 샘을 오천이라 칭하여 왔으며 능선을 개간하여 만들어진 들을 오평이라 칭함.
섬내, 섬계 마을을 가로질러 유학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시내가산곡을 침강하여 깎인 자리에 마을이 생겨 섬내또는 섬계라 칭함
화야, 신마지 마을 서북쪽에 華池(화지) 라는 소류지가 있다하여 화야라 칭함

중 3, 4, 5리 :
중3, 4 , 5리는 1993년6월부터 시작된 중리구획정리지구로서 원래 중1리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1998년도 (주)부영에서 아파트 2,635세대를 착공하여 2001년 5월 완공한 대단위 임대 아파트 지역임

  • 위치 : 칠곡군 석적읍 중리 141번지
  • 면적 : 대지면적 (21,494.98평), 건축면적 (68,992.32평)
  • 규모 : 19평(1,645세대), 23평(990세대) 상가(35세대)
  • 세대수 : 2,635세대. 상주인구:6,046명( 남 3,240 여 2,806)
  • 리별현황
    3면이 山(산)으로 둘러싸여 谷間(곡간)에 형성된 3個(개)의 자연부락이 산재되어 있어 주위 산세가 城壁(성벽)처럼 솟아있는 골짜기같다하여 城谷(성곡)이라 했다 한다.
  • 중3리 : 101, 102, 103, 109, 110동(5개동)
  • 중4리 : 104, 105, 106, 107, 108동(5개동)
  • 중5리 : 111, 112, 113, 114동(4개동)

중 6리

  • 위치 : 칠곡군 석적읍 중리 224-1번지((주)LG.Philps LCD기숙사)
  • 거주인원 : 1 ,800 명 (남 930 여 870 )
  • 현황 중6리에는 (주)LG.Philps LCD에서 미혼 근로자 기숙을 위하여 2000년2월19일 준공한 지상 10층 2동, 복지후생건물1동 등의 사원 복지시설이 이루어져 있음

남율리

남율 1리

西(서)로 낙동강이 남류 하면서 형성된 넓은 갯들을 끼고 있는 마을로서 경부고속도로의 낙동대교가 있으며 조선 왕손이 선조때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곳이 갈대밭 이었다한다. 갈대가 우겨진 이곳을 개척하여 밤나무를 심었는데 밤숲이 우겨져 밤실(栗浦)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北栗洞(북율동)과 中洞(중동)일부를 병합하여 栗浦(율포) 남쪽에 위치한다 하여 남율동이라 칭하였고 2000년 11월10일 칠곡군조례 제1730호에 의거 남율동이 분동되어 남율1리라 칭했다.

  • 세대 및 인구현황 : 156세대, 인구 : 437명(남 219, 여 218)
남율 1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음지마 닥나무 말랭이와 버리밭 등의 두 봉오리를 東南(동남)으로背(배)한 北西向(북서향)의 마을로 햇살이 늦게 들어 옹달진 마을이라 해서 陰地(음지)라함.
양지마 마을 野山(야산)을 北(북)으로 背(배)한 남향마을로 음지마에 비해 햇살이 일찍들어 양지바르다 해서 이르는 이름임.
강촌 남율리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1978년 취락구조개량사업때 낙동강 근처에 생긴 마을이라 해서 江村(강촌) 이라함.

남율 2리

남율2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샛터(新基) 남율리에서 북쪽으로 위치한 마을로 약100년前(전) 새로 터전을 잡고 形成(형성)된 마을 이라 하여 칭함.
  • 본래 행정구역상 남율1리 이었으나 2000년11월10일 분동으로 인하여 남율2리로 칭함.
  • 세대 및 인구수 : 90세대, 인구 : 252명(남 127, 여 125)

남율 3리

남율3리는 본래 행정구역상 남율1리 이었으나 현자리에 동화아파트 474세대가 건립되면서 효율적인 행정 추진을 위하여 2000년11월10일 남율1리에서 분동됨.

  • 위치 : 석적읍 남율3리 593번지
  • 규모 : 15층 4개동 474세대, 대지면적 : 18,999㎡(5,757평), 연면적 : 36,886㎡(11,177평)
  • 세대 및 인구수 : 424세대, 인구수 : 1,259명(남 649, 여 610)

남율 4, 5리

남율4, 5리는 본래 행정구역상 남율1리(대교촌) 이었으나, 1998년 주거단지 수요 증가 필요성으로 (주)友邦(우방)에서 1,999세대를 착공하여 2000년 5월 완공되어 행정 수요 증가로 인한 분동 필요성에 따라 2000년 11월10일 남율4, 5리로 분리되었으며 우방 신천지 타운은 위치상 낙동강변을 끼고 있으며 최근 낙동강변 여유 공간에 칠곡군에서 체육공원을 조성하여 산책로와 건강 증진에 기여함.

  • 위치 : 석적읍 남율리 710번지
  • 규모 : 대지면적(228,236㎡), 연면적(69,041평), 지상 20층 17동 1,999세대
  • 위치 : 석적읍 남율리 710번지
    • 1,713세대 인구 5,622명(남 2,859, 여 2,763)
    • 남율4리(101동~109동)
    • 남율5리(110동~206동)

포남리

포남 1리(上浦南(상포남))

포남1리는 면소재지 마을로서 갯들(南浦) 남쪽에 있다고 浦南(포남)이라고 하였다 한다. 원래 仁同郡 文良面(인동군 문양면) 지역 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浦南洞(포남동) 이라해서 石積面(석적면)에 편입 되었다.

  • 세대 및 인구수 : 135세대, 인구수 379명(남 184, 여 195)
포남 1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윗개내미 (안마, 밧마, 소재지) 마을에서 낙동강 본류 강변에 7개의 바위가 있어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를 七星(칠성) 바위라 불렀다. 바위의 位置(위치)가 마치 문이 열리는 형태라 하여 개내미로 부르게 되었고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윗 개내미로 칭함.

포남2리(下浦南(하포남))

포남 2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하포남 (아랫개내미) 星州李氏(성주이씨)가 설립한 마을이라 전하고 있으며 낙동강 유역에 있는 마을로 윗개내미 아래쪽에있는 마을이라 해서 아랫개내미 또는 下浦南(하포남)이라고 불렀다.
  • 세대 및 인구수 : 81세대, 인구수 206명(남 106, 여 100)

포남3리(청계)

포남 3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청계 옛날 개울물이 너무나 맑게 흘러다하여 맑아실(淸溪(청계))이라 했다. 文化柳氏(문화류씨)에 의하여 設村(설촌)되었다하며 그후 漢陽趙氏(한양조씨)가 定着(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어 있다.
걸강
  • 세대 및 인구수 : 51세대, 인구수 131명 (남 64, 여 67)

중지리

남으로 자고산(300m)이 솟아 南背北向(남배북향)으로 형성된 마을로 西(서)로는 낙동강이 南流(남류)하며 마을북쪽으로는 반계천이 西流(서류)하여 낙동강으로 流入(유입)되고 있다. 본래 仁同郡 文陽面(인동군 문양면)지역으로 중마루 중말 중마 또는 중지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創里(창리), 磻旨洞(반지동) 일부를 倂合(병합)하여 中指(중지)동 이라 하여 석적읍에 편입 하였다.

  • 세대 및 인구수 : 106세대, 인구수 285명(남 149, 여 136)
중지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중마루, 중말 중마 마을뒷 자고산 산세가 손바닥처럼 생겨 5개의 등성이(嶝(등))로 갈라져 있는데 중간 등성이에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중마루 라고 했으나 세월이 흘러 중말 중마로 불려졌다.
진골(眞谷) 고려시대 磻州縣(반주현)의 큰 장터거리가 있었는데 마을 어귀에서 동네에 들어가기까지 골이 길어 물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진골이라 칭함.
창마(倉里) 옛 仁同縣(인동현)의 社倉(사창)(中旨倉(중지창))이 있었다 해서 창마라고 불리었으며 이 마을 밑에 孔岩津(공암진)이란 나룻터가 있었다 한다.

반계리

北(북)으로 유학산의 지맥인 岐般山(기반산)(465m)이 西走(서주)하고 있어 北背南向(북배남향)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 仁同郡 文良面(인동군 문양면) 지역으로 반저, 반지, 반계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磻溪洞(반계동)이라 하여 석적읍에 편입 되었다.

  • 세대 및 인구수 : 123세대, 인구 : 331명(남 171, 여 160)
반계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서녂 반계리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磻州縣(반주현)때 驛(역)이있었다고 전한다.
점마 磻溪里 南(반계리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에 옹기점이있었다 하며 지금도 옹기굴이 남아 있다.
새터 磻溪 東北(반계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반계리에서 새로 形成(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 함.
갱변마 새터 北(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磻溪川邊(반계천변)에 위치 하였다고 붙어진 마을 이름인데 秉甲年(병갑년)(1920)수해로 집이 유실되어 새로 지으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망정리

망정 1리

석적읍 東部地域(동부지역) 주민들의 생활중심로서 마을에 亭子(정자)나무가 많아서 주변사람들이 부러워(望(망))마을 이름을 望亭(망정)이라 불렀다 한다. 원래 仁東郡 石赤面(인동군 석적면) 지역인데 1914년 寺洞(사동)과 道開洞(도개동) 일부를 倂合(병합)하여 石積面(석적면)에 편입 되었다.

  • 세대 및 인구수 : 78세대, 인구수 : 230명(남 124, 여 106)

망정 2리

망정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절 골(寺谷(사곡)) 망정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임진왜란때에 동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마을 이름이 절골 또는 寺谷(사곡)으로 불리지고 있으며 順興安氏(순흥안씨)의 集成村(집성촌)이다.
  • 세대 및 인구수 : 17 세대, 인구수 : 41명(남 22, 여 19)

도개리

도개 1리

남쪽에 巢鶴山(소학산)(622m)이 우뚝 솟아 있어 南背北向(남배북향)으로 형성된 자연부락으로 왜관과 왕래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길이 생기게 되면서 도개라 했다, 본래 仁同郡 石赤面(인동군 석적면)의 지역이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鶴田洞(학밭동)을 병합하여 石積面(석적면)으로 편입함.

도개 1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龍沼(용소) 마을뒷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 沼(소)가 있었는데 이 沼(소)에서 龍(용)이 승천했다 하여 龍沼(용소)라고 하는데 마을 이름도 여기에 연유한다.
  • 세대 및 인구수 : 63세대, 인구수 152명(남 80, 여 72)

도개 2리

도개 2리 지명유래
자연부락명 유래
매남 옛날 매화가 아름답게 핀 마을이라 해서 붙어진 마을 이름이다.
배리밭 돌이 많아 石田(석전)이라 불리었으며 마을 뒷에 바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 이름이 바리밭이라 하다가 어원이 변음하여 배리밭으로 되었다. 또한 마을 주변 老松(노송)에 학이 많이 棲息(서식)하였다 하여 鶴田(학전)이라고도 한다.
반송 마을 주변에 반송이 많아서 붙어진 마을 이름이다.
  • 세대 및 인구수 : 83세대, 인구수 199명 (남 96, 여 103)

마을 명소 및 특산물

도개온천, 미나리

본문 콘텐츠 담당자, 최종수정일

담당자
새마을문화과이형기054)979-6432
최종수정일 :
2015-10-16

본문 유틸리티

  • 즐겨찾기
  • 주소복사
  • 인쇄
  • 위로
고객만족도조사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시나요?

평가
인증후선택 통계보기